분산투자는 투자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입니다. "한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담지 말라"는 격언처럼, 우리는 여러 자산에 나눠 투자하며 위험을 줄입니다. 하지만 시장에 큰 위기가 닥치면, 믿었던 분산투자가 무색하게 모든 자산이 동시에 폭락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바로 상관관계의 함정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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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관관계와 분산투자의 기본 개념
상관관계(Correlation)는 두 개 이상의 자산이 서로 얼마나 유사하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통계적 지표입니다. 상관관계는 -1부터 +1 사이의 값을 가집니다.
- +1에 가까울수록: 두 자산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 -1에 가까울수록: 두 자산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
- 0에 가까울수록: 두 자산이 서로 영향을 거의 주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분산투자(Diversification)는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들에 투자하여 포트폴리오의 전체 위험을 줄이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면, 한 자산의 가치가 떨어져도 다른 자산의 가치가 올라 전체적인 손실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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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장 위기 속 '상관관계의 함정'
평온한 시장 상황에서는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 자산별로 상관관계가 낮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장에 예측 불가능한 큰 위기(블랙 스완)가 닥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1) 위기 시 '상관관계 1'로 수렴
시장에 극심한 공포가 확산되면, 투자자들은 모든 위험 자산에서 벗어나 오직 현금과 안전자산만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평소에는 상관관계가 낮았던 주식과 원자재, 심지어 일부 채권까지도 함께 매도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자산의 상관관계가 '1'에 가깝게 수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대외 수출주'와 '내수주'에 분산투자했다고 믿었지만, 시장 전체의 공포 앞에서는 모두 폭락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2) '유동성 역설'과 동반 매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시장에서 나타났던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투자자들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뿐만 아니라 수익률이 낮더라도 안전하다고 믿었던 채권이나 금까지도 동시에 팔아치웠습니다. 이는 투자자들이 '어떤 자산이 안전한가'를 따지기보다, '가장 쉽게 팔 수 있는 것'을 먼저 매도하는 심리 때문입니다. ETF, 알고리즘 매매 등 현대 금융 시장의 복잡성 또한 이러한 동반 매도 현상을 가속화시킵니다.
3) 통화 정책의 영향력 확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은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의 긴축(금리 인상)은 주식 시장 전체의 하락을 유발하는 동시에, 국채 가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즉, 과거에는 낮은 상관관계를 보였던 주식과 채권이 중앙은행의 정책이라는 공통된 요인에 의해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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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관관계의 함정을 극복하는 전략
그렇다고 해서 분산투자의 원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상관관계의 함정을 인지하고, 더욱 정교하게 분산투자 전략을 설계해야 합니다.
- '진정한' 비상관성 자산 찾기: 시장에서 흔히 알려진 주식과 채권, 원자재 외에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특히 REITs),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 전통적인 자산 시장과 다른 흐름을 보이는 대체 투자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자산 간 '인과관계' 분석: 단순히 상관관계 수치만 볼 것이 아니라, 자산 간에 숨겨진 인과관계를 파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유가와 주식 시장은 일견 상관관계가 낮아 보이지만, 유가 폭등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이는 곧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주식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인과관계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숨겨진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시간 분산(Time Diversification) 활용: 자산 간의 분산뿐만 아니라, 시간 분산(Time Diversification)도 중요합니다. 시장이 요동칠 때 한 번에 모든 자금을 투자하기보다, 일정 기간 동안 분할해서 투자하는 정액 매수(DCA, Dollar-Cost Averaging) 방식을 활용하면, 시장의 변동성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위기 시 동반 하락의 충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현금 자산의 중요성 인지: 시장이 패닉에 빠져 모든 자산의 상관관계가 1에 수렴할 때, 가장 강력한 방어 자산은 바로 현금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현금은 단순히 손실을 막는 것을 넘어, 폭락한 자산을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격형 자산'이 됩니다. 포트폴리오에 일정 비율의 현금 자산을 항상 보유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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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분산투자는 여전히 유효한 투자 원칙이지만, 시장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모든 자산이 동시에 폭락할 수 있다는 상관관계의 함정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평온한 시장에서의 상관관계가 위기 상황에서도 유지될 것이라는 맹신은 위험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분산투자는 '진정한' 비상관성 자산을 찾고, 자산 간의 숨겨진 인과관계를 파악하며, 현금을 방어 수단이자 기회로 활용하는 정교한 전략을 포함합니다. 투자의 가장 큰 적은 무지입니다. 상관관계의 함정을 이해하고, 더 현명한 투자자로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